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케다 신겐 (문단 편집) ==== 긍정적 ==== 우선 이마가와가에 대한 공격으로 삼국동맹이 공중분해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의 주변 국가 즉 오다나 도쿠가와 가문과의 관계는 결혼을 통해 인척관계를 맺는 등 그 이후 오히려 개선되었다. 물론 나중에 깨지기는 했지만, 이 역시 쇼군을 비롯하여 더 많은 가문들과의 동맹이 엮여 있었으며, 결코 신겐 생전에는 배신 행각을 지적 당해 외교 관계가 파탄나는 일 같은 건 없었고, 심지어 호조가와의 동맹 역시 결국 복구되었다. 또한 다케다 가의 멸망 시 호조가 다케다를 돕지 않은 것은 위에도 언급된 우에스기에 대한 내분 개입이 주 원인이며 이는 신겐 대의 일이 아니다. 기록으로 전해내려오는 전국시대 무장들의 배신에 대한 변명을 살펴보면 정말 별의별 희한한 이유가 다 나올 정도로 센고쿠 시대는 동지였던 가문이나 섬기던 다이묘의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리는 배신과 하극상이 성행하던 시대였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신겐의 배신 행각 역시 다른 센고쿠 다이묘들에 비해 특출날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를 굴복시키고 노부나가 포위망을 통해 오다 가의 병탄을 노릴 수 있는 상황에서 수명이 다한 탓에 결과적으로는 거듭된 통수에도 딱히 얻은 것도 없이 무리하게 양면 전쟁을 벌이다가 멸망의 길로 들어선 통수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불운의 다이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의리의 화신으로 평가받았던 우에스기 겐신이야말로 생전에 중요한 배신을 많이 당했는데, 그중 압권은 그 겐신을 전국에서 가장 의리있는 인물로 평가한 호조 우지야스가 일방적으로 겐신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다케다 신겐(...)과 연합한 사건이었다.] 다케다 군의 전투력은 최강으로 칭송받았으며, [[무라카미 요시키요]]와의 두 전투를 제외하면 대체로 신겐의 승률은 엄청나게 높았고 전술 이외에도 전략과 정치 양면에서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다. 또한 카이의 지리적, 정치적 조건상 신겐은 카이 영내에 적을 들이지 않고 늘 쳐들어가는 적극적 공세를 펼쳤다. 이것을 두고 (실제 저자인지는 불분명하나) 《갑양군감》의 저자인 [[코사카 마사노부]]는 "신겐 공은 단 한번도 적을 영내에 들인 적이 없으며, 늘 쳐들어가서 적과 싸웠다."라고 극찬했다. 전쟁이 영내에서 벌어지면 물적, 인적 생산 기반이 파괴되는데 카이에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카이의 보잘것없는 농업 생산력을 그나마 온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대단한 성과다. 실제로 카이병사의 전투력은 그 용감하다는 미카와보다도 한 수 위로 평가를 받았는데 이러한 평가와 다케다 신겐의 지휘력이 무관한 것은 아니다. 역사연구자인 나이시 마사히코(乃至政彦)에 따르면 다케다 신겐은 주요 센고쿠 다이묘를 중에서도 가장 앞서 철저하게 병종별로 부대를 편성하여 군대를 운용했던 다이묘이고[* 이 다케다 군과 부대끼면서 우에스기 군, 호조 군 또한 병종별 부대 편성을 도입하였다고 한다. 반면 대조적으로 오다가는 세부적인 부대편성을 가신단에 일임하는 편이었다는 것이 나이시 마사히코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다케다군의 강력함은 병사들 개개인의 무용과 더불어 이를 조직화하여 운용하는 신겐의 군사적 재능이 결합된 결과임을 추측할 수 있다. 여하간 신겐은 아무리 주변에 적이 많다해도 '''전부 무찔러버리면 그만'''이라는 마인드였고, 이는 신겐이 살아있을때는 유효했으나, 신겐이 병으로 급사하면서 드러난 패착이었다는 것. 다만 야전에서의 지휘능력은 명성과 실적에 비해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카이 병사의 용맹함과 다케다 군의 우수한 중간 지휘관들과는 별개로, 막상 전투에서는 훨씬 약세였던 [[무라카미 요시키요]]에게 완패(...)했던데다가, 박빙이었다는 [[카와나카지마 전투]]에서도 겐신보다 전력적 우위를 점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신들이 전사하는 등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승을 거두었던 여러 전투에서는 상대보다 항상 압도적인 전력적 우위[* 호죠가와의 미마세 고개 전투 정도가 그럭저럭 비등한 전투였는데, 미마세 고개에서도 사실 전력적, 지형적으로 우위를 점한 상태였다.] 를 점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신겐의 특기는 전술과 야전지휘관으로의 면모보다 전략과 외교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외교 면에서 《군감》은 지극히 무사다운 마초적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바로 타 세력에게 굴욕적으로 인질을 보낸 적이 없다는 것. 많은 다이묘들이 세력이 커지고 나서도 막내를 다른 다이묘에게 굴욕적으로 인질로 보내곤 했는데 신겐은 인질을 보내서 평화를 구걸한 적이 없다는 게 [[코사카 마사노부]]의 평가다. 그러나 사실 신겐도 자식을 보내서 인질 겸 결혼 동맹을 맺은 적은 얼마든지 있다. 그게 특별히 적의 세력을 두려워한 결과가 아니라는 게 《군감》의 주장이지만 잘 따져보면 실제로는 이마가와 가문에는 꽤나 저자세였다는 평가도 많고, 호죠가에게도 그렇게까지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물론 이마가와와 호죠 모두 전성기 기준으로 보면, 석고에서 다케다가를 압도하는 대가문이긴 하지만 《군감》의 평가가 맞지는 않다는 것. 극도의 실용주의자에 가까운 것이 외교에서의 신겐이라고 보는 편이 훨씬 타당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